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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

처음하는 음식, 해물탕에 도전하다.

원래 음식이나 주방 쪽에는 별 관심이 없는 스타일입니다.
원체 우리 어머니가 잘 교육시켜 놓으셔서 주는대로 먹고, 음식 투정 안하고, 음식 안 남기고..
머슴 스타일이죠.

결혼 전에도 설겆이는 내가 하겠지만 요리하는 것은 안 하겠다고 말했었죠.
소질도 없거니와(사실은 해보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그렇게 생각했죠.) 밥은 남이 해 주는
것으로 먹겠다는 심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거창하게 말해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안된다고 생각해 왔던 것에 대해 다시한번 '왜 그렇지?'라는 의문을 가지고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작게 말하자면 살면서 얼마든지 소소한 기쁨을 줄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놓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특히나 의식주는 우리가 살면서 매순간 부딪히는 문제인데 저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 거의 무신경으로 대처한다고 봐야할 정도로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남자분들이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니 집안일 중에서도 제법 흥미진진한(?) 일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둥이가 태어나면 같이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그러면 좋을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러다 문득 회사 서가에 꽂혀 있는 요리책들을 보다가 마음이 동하여 "국민요리책"(김민희 지음)을 읽고는 한번 해볼만 하겠다는 믿도 끝도 없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죽일 놈의 자신감..-_-;;

책을 한번 주욱 훑어보고는 어머님께 여쭤봤습니다.
"어머님, 우리 나라 음식은 양념이 전부 된장, 고추장, 고추가루, 간장, 소금.. 뭐 이런 것만 있으면 다 되는거 같은데요?"
"다 그렇지. 근데 거기에 어떻게 비율을 맞추고 눈대중으로 잘 맞춰주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거든. 거기서 맛 차이가 나는거지."
뭐 책에 있는대로 해보면 대충 되겠지...라는 충만한 무대뽀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던 차에 9월 1일(월) 퇴근길에 와이프가 저녁에 해물탕 끓일 장을 봤다고 합니다. 기회다 싶어 내가 할테니 그대로 놔두라고 했습니다. 이놈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_-;;



이제부터 첫 요리 이야기, 해물탕 편이 시작됩니다.

시작하면서..
아내가 마트에 가서 해물탕거리들을 종류별로 사다보니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한꺼번에 모아서 파는 것을 사는 것이 더 싸더랍니다. 그래서 재료와 양념까지 모두 들어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넣고 끓이기만 해도 되지만 그렇게 되면 '요리'를 하는게 아니므로 양념장은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임신 중이기 때문에 파는 양념장보다 집에서 만든 것이 더 좋을 것 같기도 했구요.
(양념장 만드는 방법이야 요리책이나 인터넷에 널려 있으므로 여기서는 패스!)


책에 있는대로 이것저것 섞어서 양념장을 만들었습니다. 보기에는 그럴듯 해 보입니다.
물에 씻은 재료들을 양푼에 담아놓고 나중에 넣을 두부와 대파을 썰어 놓았습니다. 두부는 국물을 좀 텁텁하게 만들고 보기에 지저분해 보일 수도 있으나 맛있게 먹을 수 있으므로 그냥 넣기로 합니다. 오른쪽 끝에 살짝 보이는 냄비에 아내가 따로 만들어 냉장고에 보관하던 멸치 우린 국물을 붓고 재료에 있던 무를 넣고 끓이기 시작합니다.


자, 국물이 끓기 시작하니 이제 재료들을 하나씩 넣어줍니다.
생태(맞나? 아직도 얘네들 구분을 못합니다. 동태, 명태, 황태 등등)가 크니까 먼저 넣어서 오래 익히고...룰루랄............라..
아니다!!
책에서 본 것과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_-;;


책에는 국물에 양념장을 풀기 전에 재료들을 넣으면 국물이 탁해지고 비린맛이 난다고 했나?
암튼 먼저 양념장을 풀어서 끓인 후에 재료들을 넣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고지식한 저는 몇 개 안 넣었던 재료들을 다시 건져올립니다.


양념장을 풀어서 다시 국물을 끓이고,


이제 본격적으로 온갖 재료들을 넣어서 같이 끓입니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냄새는 그럴듯 합니다. 후훗~


어느 정도 끓어 재료들이 어지간하게 익었을 때, 썰어놓았던 두부와 대파를 넣습니다.
중간에 간을 봤는데 아내가 칼칼한 맛은 괜찮은데 약간 싱거운 것 같다고 하여 간장으로 간을 합니다.



자, 완성입니다. 별로 차린 것 없는 상이지만 맛있게 먹습니다.

몇 가지 후기(?)입니다.
1. 음식에서 재료의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아무래도 따로따로 재료를 직접 고른 것보다는 싱싱함이나 상태가 떨어져 보였습니다. 아내가 장난스럽게 "다음에는 재료도 다 사다 손질해서 해봐."라고 했는데 맛있게 먹으려면 그게 제일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면 인생 피곤해 지는데..-_-;;

2. 조미료 없이 맛을 내는 것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랄까 익숙한 맛이 아니라 약간 뭔가 밍밍한 맛이랄까요? 암튼 둘 다 입맛 까다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대충 간 맞춰서 먹었는데 조미료를 넣지 않고도 맛있는 음식을 하는 경지는 굉장히 까마득해 보입니다. 물론 저희 두 분의 어머님들은 이미 그 경지에 계십니다. ^^;

3. 어떤 분야이든 첫 기억이나 경험이 좋지 않으면 흥미를 붙이기 힘들었던 것이 제 경험입니다. 요리는 거의 처음이나 마찬가지인데 첫 느낌은 좋습니다. 아무래도 먹거리는 살아가면서 계속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이라 친숙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간장을 더 넣으니 이런 맛이 나는구나. 고춧가루는 이렇구나..'등등의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언제까지 요리를 재미있어 할지는 모르겠으나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생활로 키워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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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대령한 저녁상을 잘 드신 후 배부르다며 괴로운 표정을 짓고 계십니다.
이 날 설겆이까지 풀 서비스를 받으신 후 아주 만족스러워 하셨다는.
이런거 자꾸 버릇 들이면 제 인생이 피곤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저녁이었습니다.

둥이 엄마 & 아빠의 먹고 마시는 얘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뱃살들도 이어집니다, 추욱 쳐져서..-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