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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이&패밀리

아내는 엄마입니다.

아내와 제가 둥이의 존재를 처음 알았던 때가 2008년 6월 8일입니다.
벌써 1년하고도 두 달이 지났습니다.
아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다음의 것들을 한번도 먹지 않았습니다.
술, 탄산음료, 라면, 커피, 인스턴트 식품들...
그리고 장모님의 도움도 있었지만 집에서 만든 음식에는 인공조미료를 넣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커피매니아입니다. 임신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도 몇 잔을 마셨습니다.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이 아기에게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하루 아침에 끊었습니다. 회나 음식점에서의 외식도 거의 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출산 후에도 모유 수유를 했기 때문에 아내의 음식 조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유 수유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그 어려움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아내는 출산 후 채 석달도 쉬지 않고 학원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축기 세트를 챙겨서 출근한 후 공강 시간을 이용해 빈 강의실에서 홀로 젖을 짜 모았습니다. 어떤 때에는 타이밍을 놓쳐 빈 강의실은 없고 젖이 불어 너무 아파서 급히 화장실을 이용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직 우리 나라가 여성이 사회 생활을 하기에 얼마나 불편하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지 느낄 수 있었던 한 단면이었습니다.
모처럼 일찍 퇴근한 날이라도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는 저는 바로 잠을 자지만, 아내는 잠시 눈을 붙였다가도 시간이 되면 유축을 한 후에야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아내가 출산 후 자신의 몸매가 너무 망가져 관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너무 살이 쪄서 다시 빠지지 않을까봐 걱정되고 속상하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몸매를 관리한다고 다이어트를 하면 예준이가 젖을 마음껏 먹지 못할까봐 의무적으로 음식을 챙겨먹는다고 했습니다. '여자'만을 생각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내는 어렸을 때부터 피부의 일부가 좋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잘 말하지 않지만 곁에 있는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임신을 하면 피부약들은 먹을 수가 없습니다. 모유 수유 기간에도 당연히 먹을 수가 없습니다. 아내는 그로 인한 고통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견디고 있습니다.

아내는 아침잠이 많은 편입니다. 전에 어학원에서 새벽반을 나갈 때에도 아침잠 많은 사람이 직업을 너무 잘못 선택했다는 푸념 아닌 푸념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예준이와 함께 잘 때에는 매일 밤 3~4번씩 한번도 망설이지 않고 벌떡 깨어납니다. 저는 같이 있어도 조금 피곤하면 못 일어나지만, 아내는 예준이의 칭얼거림 한번이면 바로 일어납니다. 그리고 지금도 아침 6시 40분에 제가 출근할 때 같이 나와서 예준이를 보러 갑니다.
아내는 시청률 1위의 예능 프로보다 예준이의 재롱이 훨씬 더 재미있어서 하루종일 예준이만 쳐다보고 있어도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모른다고 합니다.
출산 후 친구들도 만나면서 기분 전환 좀 하라고 말하자, 저와 예준이랑 세 식구 같이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합니다.
예준이를 데리고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예준이가 사람들에게 예쁘게 보여야 한다면서 씻기고 입히고 단정하게 꾸미는 걸 즐거워 합니다.

열 달 품고 있다 낳는 것이 이렇게 큰 차이일까요? 저는 아내만큼은 못 합니다. 아빠로서 해야 할 역할이 따로 있겠지만 아이의 생애 초기에 맺어지는 엄마와의 유대 관계는 감히 아빠가 엄두를 낼 수 없을만큼 밀착되어 보입니다.

얼마 전 아내와 다투었을 때 아내의 표현대로 조금 넓은 마음을 가지지 못한 제가 스스로에게 아쉬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의 미안함 때문에 생각을 하다 보니 오늘의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속 모르는 남들이 보기에는 좋은 남편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저를 그래도 많이 이해해 주고 지켜봐 주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애 하나 키우면서 유난 떤다고, 그 정도 수고로움도 없이 애 키운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아내가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예준이를 돌보고 있음을 두 눈으로 보고 있는 저로서는 아내가 자랑스럽습니다. 아내는 이제 '엄마'입니다.

- 冊지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