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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故 정운영님


故 정운영
194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1964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해 1972년 석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일보>를 거쳐 <중앙일보>에 잠시 몸을 담았다. 1973년 벨기에 루뱅 대학에서 학부 과정부터 경제학 공부를 새로 시작해 1981년 이윤율 저하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귀국해 한신대학교 경상학부 교수로 재직했으며, 1980년대 말부터 10년 동안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강의했다. "나는 인간을 믿는다"로 시작해 "인간의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라는 말로 끝마쳤던 그의 강의는 당시 학생들에게 암묵적인 필수과목이었다. "때로는 질 줄 알면서도 싸워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라는 말로 <이론> 창간을 주도하는 등 진보 운동의 이론적 바탕을 만들었다.
<MBC 100분 토론>, <EBS 정운영의 책을 읽는 세상> 등을 진행하며 보여준 날카로운 화술과 르네상스적 지식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한겨레>, <중앙일보>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선보인 그의 칼럼은 칼럼 글쓰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6년에는 언론인클럽 언론상(신문칼럼상)을 수상했다.
마지막까지 신문 칼럼을 기고하며 경기대에서 후학을 가르치던 그는 2005년 9월 24일 우리 곁을 떠났다. 병상에서 부인의 도움을 얻어 구술로 완성한 마지막 칼럼 '영웅본색'을 비롯해 <중앙일보>에 실렸던 칼럼을 묶은 이 책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는 그의 아홉 번째이자 마지막 칼럼집이다.
주요 저작으로 <세계 자본주의론>(1984), <한국 자본주의론>(1984), <노동가치이론 연구>(1993), <자본주의 경제 산책>(2006) 등의 경제학 이론서와 <광대의 경제학>(1989), <피사의 전망대>(1995), <레테를 위한 비망록>(1997), <신세기 랩소디>(2002) 등 여덟 권의 칼럼집이 있다.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집

지은이 : 정운영
출판사 : 웅진 지식하우스
발행일 : 2006년 초판 3쇄 발행
ISBN   : 89-01-06003-5 03300
쪽수   : 320쪽
책값   : 12,000원

이 책에는 앞서 소개했던 '다름의 아름다움'에서 잠시 소개되었던 삼소회(三笑會)에서 발행한 '출가'라는 책에 대한 저자의 칼럼이 한 편(달랑?)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그래서 앞의 책과 지금 이 책의 연관성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신다면 사실 별 상관은 없습니다.^^;

혹시 그런 경험들 없으신가요? 어떤 책을 읽다 보면 전에 다른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또 나오는 겁니다. 이런 현상은 주로 한 분야의 책들을 여러 권 읽을 때 자주 나타나는데요, 한마디로 '바닥이 좁아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전혀 다른 주제의 책에서도 같은 내용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자들과의 인터뷰>에는 연쇄살인마들에 관한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연쇄살인마들 중에는 어릴 적 부모에게 받은 학대의 경험이 무의식에 상처를 입혀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유아기 때의 부모(주로 엄마)와의 스킨십을 통한 유대 관계의 형성이 아이의 정서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러한 내용은 어떤 주제의 책에서 많이 나올까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데요, 바로 육아 관련 책에서도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바꾼 위대한 심리 실험 10장면>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바로 새끼원숭이를 이용한 스킨쉽 실험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범죄자와 육아와 심리학. 얼핏 아무 관련이 없는 주제들이지만 책읽기를 통한 "앎"의 즐거움으로 본다면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그 유명한 삼천포로 빠졌군요.
('삼천포로 빠졌다'의 유래를 보시려면 아래 '더 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본론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정운영'이라는 분에 대한 저의 기본 지식은 전무한 편이었습니다. 그야말로 TV에서 '100분 토론' 진행자라는 자막 혹은 성우의 멘트만 들었던 정도입니다. (사진도 책 표지를 통해 처음 봤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하고 싶은 말은 두 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위에 있는 저자 소개의 글을 보고 어떤 책일거라 생각이 드시는지요? 저는 눈살이 조금 찌푸려지면서 '내용이 많이 딱딱하겠구나', '경제 얘기가 많이 나오겠네', '이념적인 주장이 많겠네' 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런 내용이 많더군요.^^;
그런데 전부 그렇지만은 않다는 면모가 은근슬쩍 드러나는 글귀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조금만 볼까요?


"어째서 나는 욕심, 이생, 내생, 급함 따위의 번뇌를 잠시도 놓지 못하는 것일까? 죄라면 장가든 죄밖에 없는데!" ('출가내인' 이야기"에서)

이 글을 보고 사모님께서 살짝 상처받지 않으셨을까 하는 괜스런 걱정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


"이웃과 사회가 그렇게 차고 모질지만은 않으니 물오른 5월의 포플러처럼 쑥쑥 자라거라! 어린 우리 생명들아."('우리 모두 '도시락'을 풀자'에서)

이 문장만 놓고 본다면 신문의 칼럼이 아니라 마치 시집의 한 귀절 같습니다. '물오른 5월의 포플러'나 '어린 우리 생명'과 같은 표현은 경제학자의 입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문장은 아닐테지요.


"10일 아침 신문 국제면을 펴든 내가 토한 첫마디는 "이런 제기랄"이었다."('우리 가끔은 '연어'가 되자'에서)

이건 정말로 "그만 상상을 해버렸어"라고 밖에는.. ㅎㅎ 너무도 리얼하기도 하고 어쩐지 그 장면이 머리 속에서 상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선입견이라는 녀석을 아예 없애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라온 환경과 사회문화적인 영향으로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갇히지 않으려 하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자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여러 표현과 내용들은 저에게 가벼운 미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두 번째는 글쓰기와 글읽기에 대한 부분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쉬이 읽히는 책과 한 장 넘기기가 쉽지 않은 책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문장의 표현에 대한 것입니다. 이 책에 실린 칼럼들은 대부분 한 문장이 3줄(책 본문의 편집을 기준으로)을 넘기지 않고 있습니다. 일단 문장이 짧으니 쉽게 읽힙니다. 그러나 무조건 문장이 짧다고 해서 좋은 글은 아닐 것입니다.

짧은 문장 안에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효과적으로 내포함으로써 전달력을 높여주는 것, 이것이 바로 '짧은 문장 글쓰기'의 어려움이 아닐까 합니다.

"(중략) 그것은 부자들에 대한 굴복도 아니고, 투기와의 전쟁에서 패배도 아니다. 먼저 돈을 흐르게 하라. 결코 출몰하게 해서는 안된다."('돈을 출몰하게 하지 말라'에서)
"박승자박(朴昇自縛)을 아느냐는 국회의원의 야유는 '금시초문' 응수로 피했으나, 금시초문이 아닐 그의 선택지는 다음 셋이리라. 올리거나, 물러나거나, 가만 있거나." ('가만 있거나 아니거나'에서)


짧은 문장들이지만 매끄럽게 연결하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깔끔하게 전달하는 글입니다.
언론인클럽 언론상(1996), 삼성언론재단 삼성언론상(1999)을 받으셨던 글 솜씨가 어디 가겠는가 싶어집니다. 읽으면서도 부러워지는 "달인의 솜씨"입니다.

사실 읽으면서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주된 주제가 경제학 분야라서 기본적인 경제학적 교양 부족이 가장 큰 이유였으며, 하나하나의 컬럼이 모두 쉽지 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라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습니다.

입에 맞는 음식만 먹으면 영양 불균형에 걸리기 쉽듯이 책도 쉽게 읽히는 책들만 읽으면 지적 불균형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몸을 위해 입에 쓴 음식을 먹듯 마음(지식)을 위해 눈에 쓴 책을 읽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래에 이 책에 대한 다른 서평을 연결해 놓았습니다. 정운영님과 이 책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다른 서평 보기


- 冊지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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